기술기반 신사업 개발

03. 기술개발의 속성 - 연구실부터 상품까지

진둥아빠 2020. 11. 13.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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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실 레벨 기술

새로운 기술이 개발되었다고 해서 바로 상품을 만들 수 없다고 말씀드렸었습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양자컴퓨팅의 경우 기존의 방식에서 한개의 비트를 0,1 두가지 상태로만 놓았던 것에 비해 더 많은 중간 상태를 설정할 수 있어 계산 용량이 크게 증가할 뿐 아니라 양자적 특성을 이용하여 동시에 많은 비트(양자컴퓨팅에서는 큐빗)를 읽어들 일 수 있습니다. 2^16으로 계산해야 하는 문제를 16번 단계를 기다려야 했다면 4^8으로 바꾸고 그 8번 계산도 동시에 해버릴 수 있다면 65536배 빠른 계산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죠. 이렇게 엄청나게 좋은 성능의 양자컴퓨팅이 왜 아직도 널리 상용화되지 않는 것일까요? 그것은 이 기술이 발현되는 조건이 까다롭기 때문입니다. 시스템 부분에 따라 다르지만 대략 컴퓨터 온도가 0-40K 정도 유지되어야 이러한 기능이 구현됩니다. 엄청난 극저온을 유지시켜야 하니 엄청난 가격의 부품들이 필요하게 되고, 당연히 컴퓨터의 가격도 어마어마 해집니다. (양자컴퓨팅에 대해서 설명을 하려는 것은 아니니 이만...) (자세한 내용은 여기에 설명이 아주 잘 되어있습니다)

IBM Quantum Computer (source: https://www.ibm.com/quantum-computing/learn/what-is-ibm-q )

이렇게 기술이 발현되는 환경을 구축하기 너무 어렵거나 (그래서 환경 구축 비용이 너무 비싸거나 아니면 거의 불가능하거나) 또는 재연성이 많이 떨어지게 되면 그 기술은 '실험실 수준'의 기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00번 실험해서 한번이라도 성공하면 성공한 것이니까요, 당연히 논문이 게재되고 기사로도 나갈 수 있습니다. 또는 특허를 낼 수도 있겠죠. 주로 대학교의 연구실이나 기업/정부의 연구소라면 선행연구소에서 개발하는 종류의 기술입니다. 

Technology Readiness Level

실험실 레벨을 벗어났다고 바로 상용화가 되는 것은 아니겠지요. 보통 회사에서는 실험실(선행)을 벗어나면 양산화를 고민합니다. 하지만 기실험실에서 제품까지 가는 길을 적당히 잘 나누어놓은 reference가 있습니다.

Technology Readiness Level(TRL)이 바로 그것인데요, NASA에서 기술 성숙도를 9단계로 나누었습니다. 

Technology Readiness Level (source : https://www.nasa.gov/directorates/heo/scan/engineering/technology/txt_accordion1.html )

우주선에 적용해도 되는 기술인지를 판별하기 위해 만든 것이라 일반 상황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좀 어렵지만 상당히 참고는 됩니다. 예를 들면 앞에 말씀드렸던 '실험실 환경에서 검증되었음' 정도라면 TRL 4에 해당하고, 우주선 탑재 가능인 TRL 9 정도가 되면 일반 제품에 들어가도 될 것 같습니다.

상용 레벨 (또는 제품 레벨) 기술

실제로 제품화할 수 있으려면 앞서 말씀드린 것 같이 환경 구축 비용이 비싸지 않아야 하고 재연성이 높아야 합니다. '비싸지 않다'라는 것이 어떤 기준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인지 중요하겠죠. 그런데 여기서 하드웨어 기술인지 소프트웨어 기술인지에 따라 상황이 조금 다릅니다.

하드웨어

하드웨어 기술을 이용한 제품의 경우 사업성은 대략 아래와 같이 판단할 수 있을 것입니다

(초기투자비용) + (제품 1개당 재료비) * (제품 개수) < (제품 1개당 판매가) * (제품 개수)
→ (초기투자비용) < (제품 1개당 이윤) * (제품 개수)

가상의 반도체 제품을 만드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상상하겠습니다. 우리가 만든 기술로 반도체 칩을 만드는 장비를 만들었는데 장비 가격이 100억원입니다. 

시장 조사를 해보니 비슷한 칩이 하나에 100원입니다. 우리가 만들 제품이 기존 것보다 성능이 더 좋으니 같은 가격에 내놓으면 팔릴 것이라고 가정하겠습니다. 

칩 하나 만드는데 들어가는 재료비를 알아보니 50원입니다. 그럼 제품 한개 팔때마다 우리는 50원씩 이윤이 생깁니다. 2억개는 팔 수 있어야 장비 가격을 회수할 수 있습니다. 

(초기투자비용 = 100억원) < (제품 1개당 이윤 = 50원) * (제품 개수 = 2억개)

그런데 전세계 시장을 다 합쳐봐야 1억개도 안 팔릴 것이라면, 이 기술은 상용화하기 어려운 기술입니다. 제품을 만들어서 팔아봐야 적자만 잔뜩 나게 되니까요.

보통 이런 경우 제조 환경을 싸게 잘 조절하는 제조 기술을 개발하게 되어 생산 장비 가격을 떨어뜨리게 되면 다시 상용화가 가능해집니다.

위의 경우는 물론 이해를 돕기 위해 아주 단순화한 것입니다. 실제로는 특허관련비용, 영업/마케팅 비용, 제조 인건비, 공장 부지 등등 많은 비용이 들어갑니다.

소프트웨어

소프트웨어의 경우도 기본적으로는 사업성 판단은 동일합니다.

(초기투자비용) + (제품 1개당 재료비) * (제품 개수) < (제품 1개당 판매가) * (제품 개수)

→ (초기투자비용) < (제품 1개당 이윤) * (제품 개수)

다만 다른 것은 초기투자비용이 매우 작습니다. 사무실, 개발자, 컴퓨터 정도가 있으면 되고, 결정적으로 '매몰 비용'이 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앞선 예의 반도체 제품의 경우 우리가 제품을 바꿨다고 가정하면 기존 장비를 다시 재사용하기는 보통 매우 어렵습니다. 100억원 통째로 날리지는 않더라도 상당 부분 회수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소프트웨어는 (사무실, 개발자, 컴퓨터를 모두 엄청 비싼 것을 구해서 최고의 개발환경을 꾸민 회사가 있다고 가정해도 하드웨어 제조 설비에 비하면 보통 껌값) 내가 메신저를 만들겠다고 했다가 노트 앱을 만들겠다고 해도 (그 동안 들인 시간과 결과 코드를 제외하고는) 초기투자했던 것들을 거의 그대로 쓸 수 있습니다. 

게다가 제품 개발 과정이 소프트웨어가 상대적으로 짧기 때문에 동일한 신제품 개발 프로젝트라고 해도 투자자가 느끼는 리스크는 매우 큰 차이가 있습니다. (시간도 덜 들고 초기 비용도 덜 들고... 하다가 마음에 안들면 갈아엎지뭐)

이러한 차이가 제품 개발 프로세스 자체의 방법론에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큰 차이를 만들어 냅니다. 

다음에는 신사업 개발(New Business Development)에 대해서 다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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